음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 것을 먹던 인간은 불을 발견한 후로 고기와 채소 등을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 크기가 커졌는데요. 이전보다 커진 뇌를 가진 인간은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음식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뿐 아니라 생활 습관과 사고 방식,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반대로 음식이 인간의 생활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서도 먹을수 있는 1인 메뉴가 늘어난 것이그 예입니다.요기요 파트너마케팅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음식과 우리의 삶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보는 슬기로운 외식생활을 연재합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1인당 한해 마시는 커피 잔의 수는 평균 353잔(2018년 기준·출처 현대경제연구원). 이는 세계 평균(132잔)의 3배에 달하는 수치인데요. 물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을 두고 ‘혈관에 커피가 흐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슬기로운 외식생활 두 번째 주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료 ‘커피’입니다.
커피의 유래는 명확하진 않지만 6세기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에서 발견됐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염소가 빨간 열매를 먹고 날뛰는 모습을 보던 목동이 자신도 그 열매를 먹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는데요. 목동은 이 놀라운 열매를 이슬람 수도사들에게 알렸습니다. 커피 열매를 처음 발견한 목동의 이름이 유명한 커피 브랜드명인 ‘칼디’입니다.
수도사들은 커피가 악마의 열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 속에 열매를 던졌습니다. 이때 열매가 타면서 좋은 향이 납니다. 수도사들은 불에 타다 남은 커피 열매를 이용해 커피를 만들어 냈죠. 술을 마실 수 없는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커피는 크게 인기를 얻고 중동까지 퍼져 나갑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됐지만 지금의 커피를 있게 한 나라는 예멘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커피가 경작된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이죠. 16세기 세계 최대 커피 무역항이었던 모카가 예멘에 있어 예멘에서 나오는 커피를 모카 커피라 부릅니다.
이슬람 유물이었던 커피는 12세기 십자군 원정을 타고 유럽에 전해집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의 음료라며 커피를 탐탁치 않게 여겼는데요. 당시 유럽인들에게 물이 아닌 음료라곤 와인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교황청에 ‘커피를 금지시켜달라’는 청원까지 올라갑니다.
당시 교황 클레멘트 8세는 판결을 위해 커피를 마셔보는데요. 오히려 교황이 커피의 향과 고소함에 반한 나머지 커피를 기독교 공식 음료로 지정합니다. 유럽인은 당당히 커피를 마시게 됐고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납니다. 커피하우스는 커피를 마시면 시사와 정치, 철학 등에 대해 논하는 사교 클럽이 됐습니다.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이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죠.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아지트이기도 했습니다. 와인으로 몽롱했던 정신을 일깨우는 커피의 매력이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핫(HOT)한 음료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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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요. 라떼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 카푸치노는 거품이 많이 올라간 커피, 모카는 초콜렛이 들어간 커피죠.
국가명이나 지역에서 유래된 경우도 꽤 있습니다. ‘아메리카노’는 미국에서 시작했습니다. 미국 독립운동을 촉발시킨 1773년 보스턴 차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 영국이 차 수입 권한을 동인도회사에 독점으로 주자 보스턴 시민들이 동인도회사 선박을 습격해 차를 바다로 던져버리죠. 이후 영국산 홍차 불매운동이 시작됐고 커피를 재배하던 네덜란드가 미국으로 커피를 대량 수출합니다. 이때 미국인들이 쓴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어 마시면서 아메리카노가 탄생합니다.
더치커피는 찬물에서 우려낸 커피를 말하는데요. 한 방울 한 방울 오랜 시간 우려내야 하기 때문에 ‘커피의 눈물’로 불립니다. 우리나라에서 몇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콜드브루(Cold Brew)도 찬물에서 커피를 내리는데요. 더치커피는 콜드브루의 일본식 표현입니다.
비엔나 커피는 비엔나에서 탄생했습니다. 차가운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비엔나 커피의 본래 명칭은 아인슈패너인데요. 말이 이끄는 마차의 마부를 뜻하는 독일어입니다. 마부들이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말하는데, 마부들의 도시인 빈에서 명칭을 따 비엔나 커피로 부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가장 처음 마신 사람은 고종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죠.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건 커피믹스의 영향이 큽니다. 원래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 회사 네슬레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물만 부어 먹으면 되는 간편함 때문에 전쟁 물자로 보급됐죠. 하지만 원두에 설탕과 크림(프림)을 넣어 만든 봉지 커피믹스는 우리나라가 원조입니다. 동서식품에서 1976년 세계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달달한 맛과 간편함 덕분에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었죠.
봉지 커피믹스가 주도하던 우리나라 커피시장은 커피전문점이 등장하면서 격변기를 맞이 합니다. 할리스, 스타벅스, 이디야 등 여러 커피전문점이 생겨나고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등 에스프레소를 이용한 커피가 보편화됩니다. 여기에 인스턴트 원두커피 카누, 네슬레 캡슐커피, 편의점 얼음컵 커피 등이 등장해 인기를 끌면서 커피 시장의 덩치를 키워 갑니다.
길거리에 카페가 즐비하고 마트에는 각종 커피 제품이 진열돼있어 우리나라는 ‘커피 공화국’으로 불리기도 하죠.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듯 우리나라 커피 산업 시장 규모는 2018년 7조원을 넘었습니다. 2023년엔 약 9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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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된 커피 시장에서 커피업체들은 각자 타계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크게 4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요. 먼저 커피 시장에서 최근에는 스페셜티 커피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가 원두 재배 환경, 풍미 등 엄격히 정한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은 커피를 말합니다. 2019년 한국에 입성한 커피계 애플 ‘블루보틀’이나 한 잔에 6000~7000원 하는 ‘스타벅스 리저브’가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곳입니다.
두번째는 배달입니다. 커피는 배달 시장에서 주목받는 메뉴입니다. 액체이기 때문에 배달이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인기 배달메뉴로 떠오른지 오래됐죠. 세번째는 배달과 비슷한 맥락의 드라이브 스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타벅스가 최초로 도입했는데요.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커피를 주문해 가져가는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간 비즈니스인데요.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이른바 ‘카공족’은 카페 사장님의 골칫거리였습니다. 3000~4000원 커피 한잔을 시키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 수익과 직결되는 회전율을 낮추기 때문이었는데요. 이젠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원격근무를 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카페에서 일을 하는 이들을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공유오피스처럼 일하는 공간을 갖춰 놓고 고객을 유치하는 카페가 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커피산업의 5가지 트렌드 변화와 전망, 현대경제연구원, 2019
-커피 인문학, 박영순, 인물과사상사
-마시는 즐거움, 마시즘, 인물과사상사
-[식탁 위 경제사] 단돈 1페니의 커피와 자유로운 대화, 근대를 만들어내다, 조선일보, 2020.05.08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신동아, 20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