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 것을 먹던 인간은 불을 발견한 후로 고기와 채소 등을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 크기가 커졌는데요. 이전보다 커진 뇌를 가진 인간은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음식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뿐 아니라 생활 습관과 사고 방식,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반대로 음식이 인간의 생활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서도 먹을수 있는 1인 메뉴가 늘어난 것이그예입니다.요기요 파트너마케팅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음식과 우리의 삶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보는 슬기로운 외식생활을 연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큰 차이가 없는 곰탕과 설렁탕. ‘두 음식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요. 그런 한편으로는 설렁탕보다 곰탕을 선호하는 곰탕파, 곰탕보다 설렁탕을 선호하는 설렁탕파가 있을 만큼 취향이 갈리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슬기로운 외식생활 첫번째 주제는 ‘설렁탕 VS 곰탕’입니다.
설렁탕과 곰탕은 사촌지간
소를 주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설렁탕과 곰탕은 혈통이 비슷합니다. 소의 어느 부위가 들어가느냐가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만들내는데요. 곰국이라고도 부르는 곰탕은 곱창, 양, 사태 등 고기를 이용해 국물을 우려냅니다. 설렁탕은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처럼 뼈에 붙은 고기와 잡뼈를 한 데 넣고 끓이죠. 마지막에 소면을 넣어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습니다. 곰탕은 살코기, 설렁탕은 뼈를 넣고 끓인다는 재료의 차이 때문에 곰탕은 귀한 음식, 설렁탕은 서민 음식으로 분류됐던 것이죠.
서울을 중심으로 흥한 설렁탕
설렁탕은 조선시대 농사의 신인 신농을 모시는 제사인 ‘선농제’를 지낸 후 소를 탕으로 만들어 백성들과 나눠 먹은 ‘선농탕’에서 왔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이 변해 ‘설렁탕’이 됐다는 것인데요. 이 유래를 뒷받침하듯 과거 서적을 보면 설녕탕, 설넝탕, 설농탕 등 설렁탕을 칭하는 여러 표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설렁탕이 등장하는데요. 주인공 대장금과 그의 스승인 한상궁은 설렁탕을 주제로 경합을 벌입니다. 이때 대장금은 고급 재료와 고기를 듬뿍 넣어 설렁탕을 만듭니다. 좋은 재료를 넣고도 주인공 대장금은 경합에서 집니다. 백성들이 설렁탕을 먹는 이유는 좋은 뼈와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 잡뼈를 우리고 우려 좋은 영양소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대장금이 이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한상궁은 대장금을 크게 혼냅니다.
몽골의 '술루'라는 음식에서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술루는 소와 말, 양고기 등 고기를 넣고 끓인 탕을 말하는데요. 고려후기 때 몽골에서 술루탕이 우리나라에 넘어와 설렁탕이 됐다는 겁니다. 어떤 유래가 확실한 것인지는 학자나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른데요. 국물 색깔이 눈처럼 흰색이라는 뜻의 설농탕(雪農湯)에서 왔다는 전언까지 다양합니다.
뽀얀 국물 속 소면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인 설렁탕 | 게티이미지뱅크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설렁탕이 일제강점기 서울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음식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본은 전쟁물자 보급을 위해 한국에서 소를 대량으로 사육합니다. 살코기는 일본으로 보내고 한국에는 잡육과 뼈만 남게 됩니다. 경성에 있는 정육점들은 잡육과 뼈로 탕을 끓여 팔았죠. 한 솥에 많은 양을 끓여서 손님이 올 때마다 조금씩 나눠내기 좋았는데요.
설렁탕이 워낙 유행한 탓에 설렁탕을 나무로 된 판에 담아 어깨에 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배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1920~30년대 신문에 연재되던 장편소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음식이 설렁탕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빈처'에 설렁탕이 나오기도 하죠. 물가가 올랐을 때 한동안 자주 언급되는 대표 음식도 설렁탕이었습니다. 그만큼 흔히 볼 수 있는 외식 메뉴였다는 뜻이죠.
설렁탕에 소면이 들어가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밀가루 소비를 장려하기 위한 혼분식 장려운동 때문입니다.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넣기 시작한 소면이 설렁탕의 고기 잡내를 없애는 역할을 한다네요.
푹~ 고아서 곰탕?
설렁탕과 함께 국물 요리를 대표하는 곰탕 역시 설렁탕처럼 유래가 세 갈래로 나뉩니다. 768년 몽골어 학습서 ‘몽어유해’에 고기 삶은 물을 뜻하는 ‘공탕(空湯)’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곰탕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공탕을 몽골어 발음으로 술루라고 하기 때문에 곰탕과 설렁탕을 같은 음식이라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고기기름국을 의미하는 고음국에서 곰국(곰탕)이 유래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1800년대 말 나온 저자 미상의 ‘시의전서’에서 ‘고음국’을 두고 “큰 솥에 물을 많이 붓고 다리뼈, 사태, 도가니, 꼬리, 양, 곤자소니, 전복, 해삼을 넣고 은근한 불로 푹 고아야 국물이 진하고 뽀얗다”고 말하는데요. 푹 끓인다는 '곤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뼈와 잡육을 넣고 끓이는 설렁탕에 비해 살코기를 많이 넣는 곰탕 | 게티이미지뱅크
곰탕은 지역별로 조금씩 조리법이 다르지만 나주곰탕이 가장 대중적입니다. 살코기인 양지와 목심, 사태를 푹 끓여 만드는데요. 곡창지대로 농축업이 발달한 나주는 옛부터 부자 지역으로 꼽혔습니다. 이 비옥한 땅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대상이 됩니다. 일본은 나주에 쇠고기통조림 공장을 세웠고 이때 통조림을 만들고 남은 고기로 끓여 먹은 곰탕이 널리 퍼진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주곰탕이 유독 유명한 이유는 나주에 있는 100년 넘은 곰탕집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노포로 꼽히는 곳입니다.
설렁탕과 곰탕은 한국식 패스트푸드
시간이 흘러 설렁탕과 곰탕 프랜차이즈가 여럿 등장했습니다. 테이블 회전율이 빨라 외식 창업 아이템으로 주목받은 것인데요. 두 음식 모두 한꺼번에 끓여 놓은 국물에 고기만 얹어 빨리 내놓을 수 있는데다, 숟가락으로 후루룩 퍼먹을 수 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먹어치우기까지 햄버거나 치킨보다 속도가 빨라 ‘한국의 진정한 패스트푸드’라 불리기도 하죠.
인기 있는 가정간편식 품목 중 하나가 설렁탕·곰탕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해먹으려면 오랜 시간 끓여야하는 번거로움이 수반됩니다. 게다가 한번 만들면 족히 서너일은 모든 식구가 먹어야 하는데요. 간편식이라면 든든한 한끼를 해결하기 최고의 식품이죠.
사실 지금은 곰탕과 설렁탕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사골육수를 내서 만드는 사골곰탕, 꼬리를 넣어 푹 고아낸 꼬리곰탕까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설렁탕에 살코기만 넣어서 내놓는 음식점이 있는 반면 곰탕을 설렁탕이라고 파는 곳도 더러 있죠.
몸이 좋지 않을 때 뜨끈한 설렁탕·곰탕이 생각나는 걸 보면 두 음식이 한국인의 소울푸드임에는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참고자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1, 한복진, 현암사
-식객 11, 허영만, 김영사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 박현진, 책들의 정원
-음식가인상 "설렁탕"은 그대로, 동아일보, 1935.12.04.
-보는대로 듣는대로 생각나는대로, 동아일보, 19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