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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는 왜 을지로일까요?”

#슬기로운 외식생활 #음식의 역사 #을지로


‘​음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 것을 먹던 인간은 불을 발견한 후로 고기와 채소 등을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 크기가 커졌는데요. 이전보다 커진 뇌를 가진 인간은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음식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 뿐 아니라 생활 습관과 사고 방식,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반대로 음식이 인간의 생활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 1인 메뉴가 늘어난 것이 그 예입니다. 요기요 파트너마케팅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음식과 우리의 삶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보는 슬기로운 외식생활을 연재합니다. 



“해산물이 을지로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뭘까요?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통조림 골뱅이 판매 업체 유동과 손잡고 2020년 11월 ‘골뱅이 맥주’를 선보였습니다. 골뱅이 맥주는 ‘을지로’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세븐일레븐은 젊은 층이 을지로에서 골뱅이무침을 즐기는 걸 보고 유동과 협업했다고 밝혔는데요. 슬기로운 외식 생활 아홉 번째 편에서는 세대 불문 최고의 술안주로 꼽히는 골뱅이, 그중에서도 ‘을지로 골뱅이’의 유래와 현재를 알아봅니다. 


을지로는 1960년대에도 힙했다


요즘 을지로는 ‘힙지로’(유행을 이끈다는 뜻의 ‘힙’과 을지로의 ‘지로’가 합쳐진 신조어)라고 불리는데요. 별안간 을지로가 유행의 중심으로 떠오른 건 아닙니다. 을지로는 1960년대에도 유행을 이끄는 곳이었는데요. 


1969년 을지로 이미지 l 국가기록원



당시 을지로엔 인쇄소가 많았습니다. 경성극장·중앙관 등 영화관이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장 관계자들은 영화 홍보를 위해 전단지를 만들어야 했고 인쇄소를 매일 같이 들락날락했죠. 인쇄소 직원들과 극장 관계자, 영화를 보러온 시민들로 을지로는 항상 붐볐습니다.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기 전 을지로 구멍가게에서 술로 하루를 정리했는데요. 식당 사장님은 맛있고 개성 있는 메뉴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눈에 띈 게 골뱅이라고 합니다. 


골뱅이는 동해에서 잡히는 고둥을 이르는 말인데요. 나선 모양 껍데기 속에 숨어 사는 연체동물입니다. 골뱅이는 오랜 시간 신선함을 유지하기 힘들어 원래 동해 지역에서만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 수출 목적으로 통조림 골뱅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지역에서도 골뱅이를 맛볼 수 있게 됐죠.  


매콤한 골뱅이 무침 l 게티이미지뱅크


유행 선두주자인 을지로 구멍가게 사장님들이 새로운 식재료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통조림 골뱅이를 활용한 음식이 을지로에 등장했죠. 식당들은 저마다 골뱅이에 북어채를 곁들이기도 하고 주방에 늘 있는 고추장·고춧가루·파채를 골뱅이에 얹어 손으로 무치기도 했습니다. 


짭조름하고 매운 양념이 버무려진 골뱅이는 인쇄소 직원들과 시민들의 술안주로 사랑받았습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쇄소 근처 어느 구멍가게를 찾아가도 골뱅이를 맛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이 만들어진 겁니다. 

 
2호선 개통으로 서울 명물 된 골뱅이


을지로 골뱅이는 1980년대 서울의 명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철 2호선 개통이 큰 역할을 했는데요. 을지로는 1983년 지하철 2호선 을지로 구간 개통으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언론 기사를 보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1983년 8월 25일 동아일보는 ‘상권 중심지 을지로 번영 되찾자’ 기사에서 “호경기에 대한 전망으로 건물을 매입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을지로 3가역 앞에는 C 물산의 지하 3층 지상 10층 규모의 업무용 빌딩이 한창 공사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982년 을지로 4가 지하철 공사 현장 l 국가기록원


지하철이 뚫리고 쌍용그룹·동부그룹 등 큰 회사가 몰리면서 골뱅이를 찾는 사람은 더욱더 늘었습니다. 골뱅이 골목엔 하루를 정리하며 술 한잔 기울이는 직장인들로 가득했죠. 상사 손에 이끌려 온 이들도, 동기와 한잔하는 이들도 술과 골뱅이로 피로를 풀었습니다. 


얼마나 골뱅이를 찾는 사람이 많았는지 유명 개그 프로그램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KBS 2TV에선 방영했던 코미디 프로그램 ‘쇼! 비디오자키’의 코너 ‘네로 25시’에선 골뱅이가 단골로 등장했습니다. 술 취한 페트로니우스 역할을 맡은 개그맨 정명재씨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골뱅이 하나 추가!”는 전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유행어였다죠. 


네로25시 페트로니우스 역할을 맡은 정명재씨(파란 옷) l 유튜브 KBS 코미디 크큭티비 캡처 

 
힙지로에 불어닥친 코로나 여파


1990년대 들어 을지로는 쇠퇴하기 시작했는데요. 산업화의 호황을 뒤로하고 낡은 인쇄소와 오래된 골목이 사람들에게 외면받은 겁니다. 세련된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인기를 얻으면서 을지로의 낡은 영화관·극장은 문을 닫았고 인쇄소들도 을지로를 떠났습니다. 2000년대에는 재개발 순위에서 뒤로 밀리면서 시간이 멈춰버린 황폐한 지역으로 남아버렸죠. 


뜻하지 않게 1980~90년대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을지로 골뱅이 골목은 2018년 다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와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를 합친 신조어 ‘뉴트로’ 열풍이 시작되면서 을지로가 젊은 세대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겁니다. 2018년부터는 언론에서도 힙지로를 인용해 을지로를 소개했는데요. 찾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서울시가 ‘우리 마을 가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상권의 흥망성쇠를 분석할 때 특정 상권에서 길을 걷고 있는 인구를 측정하는 ‘길 단위 상존인구’란 수치를 봅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 상권의 길 단위 상존인구는 2018년 4분기(10~12월) 기준 1m2당 8만1249명이었습니다. 2017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2.3% 증가한 수치입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 상권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는 거죠. 


을지로 골뱅이 골목 상권엔 식당도 많아졌습니다. 2018년 1분기(1~3월) 기준 224개였던 외식업 매장은 같은 해 4분기(9~12월) 232개로 늘었습니다. 식당은 꾸준히 증가하며 2020년 4분기(9~12월)엔 268개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을지로 골뱅이 골목도 코로나19 여파를 비껴가진 못했는데요. 길거리에 작은 테이블을 두고 맥주와 골뱅이를 먹던 풍경은 사라졌습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 상권을 찾는 사람도 크게 줄었는데요. 을지로 골뱅이 골목 상권의 2020년 3분기(7~9월) 기준 ‘길 단위 상존인구’는 6만2264명입니다. 이는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7.2% 줄어든 수치입니다.




참고자료


-음식이 있어 서울살이가 견딜 만했다, 정은숙, 따비

-우주선도 만든다는 그 거리 그 사람들, 한겨레신문, 2016.10.28

-중구 문화관광 공식 홈페이지

-골뱅이통조림輸出(수출) 沖繩(충승)에 2백여상자, 매일경제, 1969.05.08

-商圈(상권)의 中心地(중심지) 乙支路(을지로) 옛繁榮(번영) 되찾자, 동아일보, 1983.08.25

-을지로 골뱅이는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시사인, 2012.03.16

-골목 전체가 맥주 축제의 장 을지로 노가리골목, 월간식당, 2019.07.01

-골뱅이가 맥주 속으로? 세븐일레븐, `유동골뱅이맥주` 출시, 매일경제, 2020.11.04

-다시 을지로, 김미경, 스리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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