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 것을 먹던 인간은 불을 발견한 후로 고기와 채소 등을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 크기가 커졌는데요. 이전보다 커진 뇌를 가진 인간은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음식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뿐 아니라 생활 습관과 사고 방식,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반대로 음식이 인간의 생활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서도 먹을수 있는 1인 메뉴가 늘어난 것이그예입니다.요기요파트너마케팅팀에서한달에 한 번씩 음식과 우리의 삶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보는슬기로운 외식생활을 연재합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의 하굣길 허기진 뱃속을 달래주는 컵떡볶이가 있는가 하면 시험이 끝난 후 친구와 함께 분식집에 들러 여러가지 사리를 한 데 넣어 끓여먹던 즉석떡볶이도 있습니다. 추운 겨울 포장마차 앞에 서서 먹던 빨갛고 달달한 떡볶이도 있죠. 슬기로운 외식생활 세 번째는 매콤달달한 맛으로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우리나라 국민간식 대표 주자 떡볶이입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만들어 먹던 떡볶이가 원래 하얬다는 사실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래떡을 간장과 야채와 함께 볶아 먹었다는 ‘떡산적’이 궁중떡볶이의 시초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떡 ‘병’자에 구울 ‘자’자를 쓴 ‘병자’를 떡볶이로 보기도 합니다. 1896년에 쓰여진 '규곤요람'에는 병자 요리법을 두고 "전복, 해삼을 삶아 썰어 냄비에 담고 흰떡을 썰어 넣고 녹말과 후춧가루, 기름 등을 풀어 지적지적하게 볶는다"고 나옵니다.
떡볶이의 시초로 여겨지는 '궁중떡볶이' | 게티이미지뱅크
떡볶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1800년대 말 출간된 저자 미상의 요리 서적 '시의전서'에서였습니다. 설날에 떡국을 먹고 남은 가래떡에 소고기와 버섯, 양파, 당근, 간장, 깨소금을 넣고 버무려 볶은 음식이라 나오죠.
쌀로 만든 떡과 고기 자체가 귀한 식재료였기 때문에 궁중이나 양반가가 아니면 일반 백성들이 해먹기 여러운 음식이었는데요. 궁중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떡볶이는 1926년 순종이 승하하면서 궁에서 쫓겨난 나인과 내시들이 시장에서 떡볶이 음식점을 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분식의 대명사 빨간색 떡볶이 | 셔터스톡
우리에게 친숙한 새빨간 고추장 떡볶이의 역사는 1950년 시작됐습니다. 2000년대 고추장 광고에 등장해 ‘며느리도 몰라’라는 대사로 유명했던 마복림 할머니가 지금의 고추장 떡볶이를 탄생시켰다는 설이 있는데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서울 신당동 골목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던 할머니가 어느날 짜장면 그릇에 실수로 떡을 빠뜨렸다가 춘장과 고추장을 섞어 만들게 됐다는 얘기가 정설로 전해집니다. 마침 미국에서 대량 수입된 저렴한 밀가루로 만든 밀떡이 고추장 양념과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즉석떡볶이. 가스 버너에 올려 각종 토핑과 함께 끓여 먹는 것이 특징 | 게티이미지뱅크
마복림 할머니 가게를 중심으로 하나 둘씩 떡볶이집이 생겨났지만 1960년까지만 해도 빨간 떡볶이보다는 간장으로 만든 떡볶이가 더 익숙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지금의 빨간 떡볶이가 대중화됩니다. 당시 분식집이나 다방에 DJ가 있는 것이 유행했는데 떡볶이 전문점도 예외가 아니었죠. 어묵, 쫄면, 라면, 군만두, 삶은 계란 등 떡볶이에 다양한 사리가 추가되고 떡볶이 소스에 밥을 볶아먹기도 했습니다. 색다른 음식과 DJ 문화까지 떡볶이 골목은1970~80년대대학생들사이에서그야말로‘핫플레이스’였습니다. 신당동에 떡볶이 전문점이 몰리면서 신당동은 떡볶이 전문 골목을 가진 유일한 동네가 됩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면서 빨간 떡볶이는 동네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간식이자 식사가 됐습니다. IMF 금융 위기 시기 유망 자영업으로 '떡볶이 전문점'이 꼽히기도 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인데다 값싸게 한끼를 떼울 수 있어 불황에 맞는 창업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죠. 창업비용이 적고 숙련자가 아니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조리법이라는 점도 떡볶이 부흥기를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다양한 토핑과 소스로 다채로워진 떡볶이 | 셔터스톡
2000년대 후반부터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성업하기 시작했는데요. 여러 프랜차이즈가 저마다 다양한 토핑과 소스를 차별점으로 내세우면서 떡볶이는 진화했습니다. 쌀떡과 밀떡으로 모자라 조랭이떡, 별모양떡, 고구마나 치즈가 든 떡이 등장합니다. 기다란 가래떡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넣기도 하죠. 짜장, 카레, 크림소스, 명란젓, 마라 등 떡과 버무릴 수 있는 소스의 가능성도 무한합니다. 떡볶이의 맵기를 단계별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내세우는프랜차이즈도많습니다.
‘떡볶이 소스에 뭘 찍어 먹어도 맛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순대와 튀김, 라면사리나 쫄면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치즈는 물론 삼겹살, 베이컨, 오징어 등 다양한 토핑이 떡볶이 속으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알고보니 떡볶이가 어느 식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만능 음식이었던 것이죠. 최근에는 핫도그나 중국 식재료인 넙적당면을 넣어 먹는 게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죠. 1000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컵떡볶이가 있는가 하면, 한 그릇에2만~3만원하는떡볶이도흔합니다.
해외에서도 떡볶이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을 나타내는 여러 기사 | 네이버 뉴스 캡처
떡볶이의 인기는 굳건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 정보공개서를 보면 영업표지(브랜드)에 ‘떡볶이’가 있는 프랜차이즈 126곳이 등록돼있습니다. 대표 외식메뉴 치킨이 250개, 피자가 128개인 걸 보면 떡볶이의 강세를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엔 치킨집에서도 떡볶이를 많이 팔죠. 해외에서도 인기입니다. 몇몇 프랜차이즈는 한류 인기와 유튜브를 타고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에서 가맹점을 늘리고 있죠.
배달음식 중 돋보이는 음식도 단연 떡볶이입니다. 이전에 배달음식 하면 짜장면이나 피자, 치킨을 떠올렸지만 이젠 떡볶이가 배달음식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음식이 됐죠. 인스타그램이나 포털 사이트에서 ‘배달음식’을 검색하면 흔히 볼 수 있는 게시물이 ‘떡볶이’이기도 합니다.
참고자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떡볶이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1, 트로이목마, 2018.06.30.
-궁중의 식탁에서 전국의 길거리로 퍼져나간 떡볶이의 역사, 조선닷컴, 2014.03.27.
-IMF시대 유망 자영업 (3) 떡볶이 전문점 먹자골목·학원가 최고입지 월 순수익 200만원 넘어, 매일경제, 199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