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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지난해 8월. 어기영 사장님은 매장을 접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녁 9시까지 딱 한 테이블의 손님만 받았기 때문인데요. 직원 2명의 인건비는 물론 전기요금·가스비 등 고정 비용을 내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다음날 사장님은 임대인에게 폐업 의사를 전했습니다.
사장님은 집기부터 간판까지 매장에 있던 모든 걸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건물주가 매장에 찾아왔습니다. 건물주는 “사장님, 창문 선팅도 제거하셔야죠”라며 사장님을 쏘아붙였습니다. 사장님은 반발했습니다. 사장님 이전 임차인이 그대로 둔 선팅 필름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건물주는 “선팅 제거 안 하면 비용을 보증금에서 빼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실제 한 사장님이 겪은 상황을 각색한 사례인데요. 원상복구 범위는 폐업 후 재창업에 도전하는 사장님들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경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계약서를 쓸 때 원상복구 범위를 정하지 않았다면 선팅 필름을 제거할 의무가 없습니다.
판례에서 말하는 원상복구란 ‘임차인이 임대한 당시의 상태’를 뜻하는데요. 최근 판결 내용과 과거 판결 내용을 각각 살펴보겠습니다. 두 판결 내용을 요약하면 ‘임차인이 임대하기 전부터 있던 시설은 원상복구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판례로 살펴보는 원상복구 범위]
①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차목적물(매장)을 반환할 때는 원상복구 의무가 있으며 원상복구는 ‘임대 당시의 상태’를 뜻한다.
대법원 2019.8.30.선고 2017다268142판결
②이전 사람이 개조/설치한 시설은 원상복구 범위가 아니다.
대법원 1990.10.30.선고 90다카12035 판결
▶어기영 사장님은 2018년 7월 28일 건물주 A씨와 계약을 맺고 건물에 입점했습니다. 두 판례에 따르면 어기영씨에겐 계약과 동시에 폐업 시 건물 시설 및 구조를 원상복구해야 하는 의무가 생깁니다. 어기영씨와 건물주 A씨가 원상복구 범위를 따로 논의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말하는 원상복구 범위는 ‘어기영씨가 건물주와 계약한 당시(2018년 7월28일)의 상태’를 뜻합니다.
어기영 사장님이 선팅을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계약서에 원상복구 관련 별도 내용이 없기 때문’인데요. 상가임대차 계약서를 쓸 때 원상복구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 놓았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판례로 살펴보는 원상복구 범위 정하는 법]
①임차인과 임대인은 원상복구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19.8.30.선고 2017다268142판결
②임차인과 임대인이 원상복구 범위를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면 임차인의 원상복구 범위는 ‘임대받았을 때의 상태’다.
대법원 1990.10.30.선고 90다카12035 판결
▶어기영 사장님과 건물주 A씨는 계약 과정에서 원상복구 범위를 별도로 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면, 어기영 사장님이 폐업 시 원상복구 해야 하는 범위는 ‘임대 받았을 때의 상태’입니다. ‘그 이전 사람이 시설한 것’까지 원상복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가임대차계약서엔 크게 3가지 사항(건물 구조 및 면적 등 부동산 내용, 보증금 및 전월세 등 게약 내용, 특약)이 들어가는데요. 원상복구 범위는 특약에서 다룹니다. 특약에 원상복구 범위를 지정하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위 판례처럼 원상복구 범위는 임대 당시 매장 상태를 뜻합니다. 하지만 특약에서 원상복구 범위를 ‘타일을 포함한 화장실 시설을 모두 철거한다’고 기재하면 계약 종료시 특약에 맞게 사장님이 설치하지 않았던 화장실 시설도 모두 철거해야합니다.
그래서 원상복구 범위를 세세하게 쓰는 게 좋은데요.‘계약 종료시 화장실 구조를 원상복구 한다’처럼 모호한 문장은 사장님과 건물주 간 문장 해석 싸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임대차 종료시 화장실 구조는임차인의 임대 시점으로 원상복구 한다’처럼 구체적인 시점을 문장에 넣으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