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고피자’에서 피자 한판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다른 피자 매장에선 피자를 굽는 데만 5분 넘게 걸리는데,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피자 제조 과정을 단순화한 ‘주방 혁신’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피자는 외식업 사장님이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랍니다.
피자 모양부터 다릅니다. 가로 25cm, 세로 17cm의 타원형 도우는 딱 1인용인데요. 주문이 들어오면 비닐을 찢어 도우를 꺼냅니다. 이미 모양이 잡혀있기 때문에 도우를 얇게 펴는 성형 과정은 필요 없죠. 소스를 바르고 토핑을 올린 뒤 ‘고븐’의 문을 열어 피자를 넣기만 하면 됩니다. 고븐은 고피자에서 자체 개발해 특허 출원까지 한 스마트 화덕입니다.
고피자 임재원(32) 대표는 싱가포르경영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2015년 카이스트 경영공학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홍보 대행사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2016년 고피자를 창업했습니다. 2019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아시아 30대 이하 리더’에 아이돌 블랙핑크, 축구선수 이강인과 이름을 나란히 올렸습니다. 포브스는 매년 아시아·태평양의 30세 이하 젊은 기업가와 떠오르는 스타 서른 명을 선정하는데요. 여기에 임 대표가이름을 올렸다는 건 고피자가 피자 제조 과정을 혁신해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푸드테크’ 기업으로 주목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피자 임재원 대표
1톤 푸드트럭에서 시작한 고피자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른 2020년 연매출 100억원, 가맹점 100호점 성과를 냈습니다. 인도, 싱가포르, 홍콩에서도 고피자를 볼 수 있습니다. 고피자의 가능성을 알아본 투자사로부터 유치한 누적 투자금액은 80억원에 달합니다. 이 모든 성과 뒤에는 치열한 피, 땀, 눈물로 점철된 창업 과정이 있었는데요. 서울 마포구 독막로 고피자 본사에서 임재원 대표를 만나 고피자의 창업 이야기와 경쟁력을 들어봤습니다.
학창 시절은 물론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었던 임 대표. 2015년의 일입니다. ‘왜 피자는 혼자 못먹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노트북으로 피자 시장을 알아보던 임 대표는 피자에 꽂혔습니다. “피자 시장은 격동기입니다. 피자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어요. 피자가 대가족, 파티용 음식이었다면 이젠 피자를 혼자서 먹고 싶어해요. ‘피자를 먹고 싶다’는 욕구는 그대로이고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죠. 컴퓨터가 PC에서노트북, 모바일로 옮겨가는 것처럼요.”
퇴근 후 가까운 카페로 바로 옮겨 세계 피자 시장을 조사했습니다. 이미 해외에선 피자는 물론 음식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었는데요. “미국에선 2015~2016년 외식업계에 ‘패스트 캐주얼(fast casual)’ 바람이 불었어요. 고급 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의 중간 성격이에요.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만들면서도 건강에 좋은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먹을 수 있죠. 우리나라에선 그저 패스트푸드로 인식되던 피자가 미국에선 패스트 캐주얼 바람에 힘입어‘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고피자의 베스트셀러인 페퍼로니 피자(한 판에 5900원)
피자 매장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알고 싶어 주말에는 피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여기서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피자 만드는 게 그야말로 고역이었어요. 피자 도우 펴고, 토핑 올리고, 큰 삽에 올려서 뜨거운 오븐에 넣고… 어깨랑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고 뜨거운 오븐에 다치기 십상이었어요.”
매출 대비 이익이 많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피자 만드는 데 실상 큰 비용이 들지 않아요. 매출총이익은 높은데 순이익은 생각보다 적죠. 판관비가 많이 들어서 그래요. 피자 만드는 토핑대, 오븐 등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인건비가 높아요. 제가 알바하던 곳은 하루 200만~300만원 매출이 났는데 일하는 직원만 6~7명이었어요. 지금보다 인건비가 저렴할 때였지만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죠.”
2016년 푸드트럭 위에서 ‘1인용 피자’를 위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푸드트럭에서 시작한 건 돈이 없어서였어요. 통장에 200만원 있었거든요. 은행 가면 대출을 다 해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 한도가 700만원이더라구요. 나름 회사 생활도 하고, 뭐 하나 연체된 적도 없었는데도요. 매장을 낼 순 없으니 5일장이나 돌잔치를 겨냥하기로 했어요. 1톤 트럭을 사서 푸드트럭으로 개조했죠. 2000만원 정도 들었어요.”
고피자 임재원 대표
푸드트럭을 개조할 때도 효율성을 우선으로 따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길거리 푸드트럭을 보면 쪼그려 앉아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음식을 만들었어요. 우선 쪼그려 앉지 않고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뜯어 고쳤죠. TV를 달아서 홍보영상도 틀고, 메뉴판도 띄워놓고 그랬어요.”
2016년 3월 밤도깨비 야시장에 입점했을 때 하루 600만~700만원 매출을 올릴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2017년 백화점 30여곳에 팝업스토어를 내기도 했죠. 하지만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혔는데요. “피골이 상접한다고 하죠? 그때 그랬어요. 여름엔 푸드트럭 안 온도가 50도를 넘어요. 먹어도 살 안찌고, 아무리 물을 마셔도 화장실을 안가요. 육체적으로 그렇게 고생은 하는데 매출이 들쭉날쭉해서 안정성은 없었어요. 날씨 안좋으면 그날은 사실상 문 닫은 날이니까요.”
아무리 조리 방식을 바꾸고 빨리 만들기 위해 노력해도 제조 과정 자체에 혁신이 없는 이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고피자 전용 화덕인 ‘고븐’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때부터였습니다. 전용 도우 개발도 고심했습니다. 피자 도우를 얇으면서도 넓게 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죠. 혼자서 먹을 만큼의 크기로, 도우 펼 시간조차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죠.
창업 초반 밤도깨비야시장에서 푸드트럭 장사하는 모습 | 임재원 대표 제공
하지만 당시 함께 하던 직원 5명은 기술 개발에 반대했습니다.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할 때인데 백화점에서는 화덕을 못써요. 순전히 나중을 생각하고 만드는 거였죠. 투자 받으러 다닐 때도 피자 만드는 데 집중하라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개발은 또 잘 안되지… 미칠 노릇이었죠. 화덕은 가스로 열기를 만들어내는데요. 전기 오븐을 쓰면 원하는 대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반면 가스를 쓰면 불이 확 타올랐다가 확 꺼져버려서 일정하게 온도를 유지하는 게 힘들어요.”
9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2017년 12월 섭씨 500도에서 한번에 6개 피자를 구울 수 있는 고븐의 특허 출원을 했습니다. “고븐의 크기는 1단 냉장고(가로 80cm·세로 80cm·높이 160cm)만합니다. 보통 피자 매장에서 사용하는 오븐보다 크기가 압도적으로 작죠. 피자삽 크기도 일반 매장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작아요. 피자를 넣으면 전자레인지처럼 안에서 판이 돌아가요. 다른 가스 화덕과 달리 비교적 온도가 꾸준히 유지되는 것도 차별점입니다.”
파베이크 도우를 만들 200평 규모의 공장도 세웠습니다. 파베이크 도우란 미리 초벌해둔 도우를 말하는데요. 한 장 당 원가가 1800원으로 피자 가격(4900원)의 반 이상을 차지해 임 대표가 아예 직접 만들기로 한 겁니다. 2018년 서울 대치동에 1평(3.3㎡) 짜리 매장을 열었습니다. 대치동 본점에선 별다른 홍보 없이도 월 6000만~7000만원 매출을 낼 만큼 장사가 잘됐습니다.
옆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도우를 올려 놓는 판이 계속 돌아가는 고피자 내부 모습 | 임재원 대표 제공
지금은 약 40명의 직원 중 7명의 연구개발인력이 고피자의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세계 로봇대회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는 연구원 출신 친구가 합류해 개발 선봉대를 맡았습니다. 좀더 편리하고 빠르게 피자를 굽기 위해 고븐을 업그레이드 할 예정입니다. 레시피를 교육하고 관리해주는 AI 시스템과 피자를 자르고 소스를 뿌려주는 로봇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고피자의 성장 동력은 기술이에요. 기술이 없었다면 투자를 받지도,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죠.”
이런 기술 덕분에 5평 미만 작은 매장에서 혼자서도 1시간에 피자 100판 이상 만들 수 있습니다. “피자 만드는 게 너무 쉬워서 ‘애들 장난 같다’ 말하는 분도 계셨어요. 이렇게 하면 얼마든지 하겠다고 하시죠.”
‘몇날 며칠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맛있다’는 음식 장사하면 으레 떠오르는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건데요. 임 대표는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간편하면서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라 강조합니다.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정성 들여 일하려면 본인부터 편해야 해요. 새벽 시장 나가서 식재료 사서 오전 내내 다듬고, 음식 만들고 그렇게 에너지를 쏟으면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한계가 있어요. 조리 과정을 간편화 한 대신 나머지 시간은 고객에게 더 친절하게, 체계적으로서비스 하는 데시간을 할애 하시길 바래요.”
파베이크 도우로 만든 피자를 고븐에 넣어 굽는 모습
쉬운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피자는 한 판에 4900원부터 시작하는 낮은 가격에도 이익을 냅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공개한 정보상으로 가맹점 평균 월매출이 2100만원인데요. 사장님께서 매출의 20% 내외 이익을 가져가신다 보면 됩니다. 수익 배분은 다른 피자 프랜차이즈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저희 매장에서 1~2명이 일하고 피자 만드는 게 간편하기 때문에 실상 더 큰 수익을 가져간다고 봅니다. 판관비에서 월세와 인건비가 40~50%를 차지하고식재료비가 35~40% 정도 돼요.”
2018년 8000원이었던 객단가가 2020년 1만3000원으로 늘었는데요. 1인용 전용 메뉴가 오히려 객단가를 올리는 역설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메뉴가 1인용이니까 2~3명도 같이 와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어요. 원래 피자가 공평하게 더치페이하기 좀 어려운 음식이잖아요. 근데 저희는 메뉴가 딱 구분돼있으니까 여러개 시켜서 나눠 먹는 분들이 많아요. 회사에서도 단체 회식은 못하니까 저희 피자를 인원수만큼 시켜서 각자 먹는 경우도 많죠.”
임 대표는 고피자 창업 초반부터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했습니다. K-피자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겁니다. “스타벅스, 맥도날도 모두 나스닥에 상장해있죠.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간편하게 만들면서도 늘 맛있는 음식’입니다. 주방에 들어가보면 이미 자동화돼있죠. 저희는 피자를 스마트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저희가 어떻게 성장할지 예측이 안됩니다.”
(위에서부터) 2018년 고피자 대치 본점 내부 모습과 인도 코라망칼라 매장 내부 모습 | 임재원 대표 제공
해외에서도 고피자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2019년 5월 인도 뱅갈루루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홍콩 등 3개국에 진출했습니다. 100여개 매장 중 70개는 한국에 있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영업 중입니다. 2020년 4월 싱가포르에 진출한지 8개월 만에 월 1억원 매출을 냈습니다.
시장에서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임 대표는 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말합니다. “2018년만 해도 담달 직원 월급조차 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2020년도 투자자들에게 고피자의 실적을 입증해야하는 하는 중요한 시기여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어요. “사업가는 성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너무 힘들어서 상담도 받아보고 했는데 요인이 외부에 있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누구나 열심히 해요. 성과가 나야만 하죠.”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로 임 대표는 도전, 실행력, 끈기를 말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늘 나를 뛰어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는데요. 끈기도 한 몫을 했다고 봐요.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성향이 창업하는 데 도움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