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몸보신을 위해 원기를 충전해줄 음식을 찾기 시작합니다. 슬기로운 외식생활 열세 번째 편에서 몸보신 대표 메뉴인 장어 요리의 유래와 역사를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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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식용 가능한 장어는 크게 붕장어, 갯장어, 뱀장어 세 종류가 있습니다. 붕장어와 갯장어는 바다장어인데요. 붕장어는 수산시장이나 음식점에서 일본식 이름인 ‘아나고’라고 불립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와 주로 술집에서 안주거리로 판매하죠. 갯장어는 이빨과 입모양이 매우 날카로워 생김새가 독특한데요. 회나 구이로 먹기도 하지만 샤브샤브로 먹을 때 그 본연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뱀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강에서 자라는 민물장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양식으로 많이 먹는 장어구이는 민물에 사는 뱀장어로 요리합니다. 보통 소금에 구워먹거나 매콤한 양념구이로 먹습니다.
‘곰장어(먹장어)가 빠졌다’ 하실 수도 있는데요. 곰장어는 몸이 긴 생김새가 비슷해 이름만 장어라고 붙었을 뿐 장어가 아닙니다. 물고기라고는 하지만 턱뼈가 없고 둥근 입을 가지고 있어 어류가 아니라 ‘원구류’로 분류되죠.
뱀장어가 바다와 강을 왔다갔다 할 만큼 먼 길을 다니는 것을 보고 옛날엔 장어를 ‘만리어’라고 불렀습니다. 1610년에 완성된 의학서 동의보감에서 ‘장어’ 대신 ‘만리어’라는 이름을 썼죠.
우리에게 익숙한 ‘장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에 등장합니다.1819년 실학자 정약용이 쓴 어휘풀이 책 ‘아언각비’에 ‘만리어는 장어다. 생긴 것은 뱀과 같다.’라고 적혀 있죠. 18세기 전까지 ‘장어’는 편지나 보고서에만 가끔 등장해 공식적인 이름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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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워먹으면 담백한 맛이 일품인 장어는 언제부터 한국 식탁에 자리잡았을까요. 조선시대부터라는 얘기도 있고 일제시대부터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1460년에 쓰여진 우리나라 최초의 식이요법서 ’식료찬요’에 연산군이 장어를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몸이 좋지 않을 때면 장어를 고아먹고 기력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장어죽이나 장어구이 요리법도 자세히 적혀있죠.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뱀장어는 몸이 쇠약해졌을 때 먹으면 기력을 돋우고 상처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고서에 남겨진 기록들을 참고해 조선시대부터 선조들이 즐겨먹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반면 조선시대에 즐겨먹지 않던 장어가 일제시대에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재 한국 장어 요리가 대부분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식 전문가들이 많죠. 조리법이 일본 방식과 비슷한 만큼 장어를 즐겨먹는 식습관의 시작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어는 ‘풍천장어’입니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옆을 지나는 주진천과 서해가 만나는 민물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풍천장어라고 부릅니다. 갯벌의 영양분이 서해의 강한 조류를 타고 강으로 들어와 싱싱한 장어가 잡힐만한 곳이죠.
전북 고창 향토 학술연구단체인 고창문화연구회는 풍천장어의 ‘풍천’이 고창군의 고유지명이라고 설명합니다. 동네 주민들은 선운사 앞을 지나는 주진천을 풍천강이라고 불렀다고 하죠.
풍천이 특정 지역명이 아니라 ‘바람’과 ‘강’을 뜻하는 한자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바다에서 태어난 어린 뱀장어가 강으로 들어올 때 육지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오기 때문에 ‘바람풍(風)’에 ‘내천(川)’의 글자를 따 ‘풍천 장어’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풍천의 의미가 무엇이든 우리나라에서 ‘풍천장어’ 명소는 전북 고창입니다. 고창 선운산 일대 풍천장어거리에는 40여 개의 풍천장어집이 모여 있고 양념구이, 소금구이, 복분자구이, 장어탕 등 장어 요리를 맛보러 오는 관광객이 모여듭니다.
대표적인 장어 요리는 소금에 구워먹는 소금구이가 있고 매콤한 양념을 발라 구워내는 양념구이가 있죠.
장어 소금구이 조리법은 생각보다 간단한데요. 손질된 장어를 씻어 물기를 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기름을 부은 달궈진 팬에 소금과 함께 구워내면 담백한 소금구이가 완성됩니다. 앙념구이는 먼저 양념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보통 고춧가루와 고추장, 간장, 미림, 설탕 등이 들어갑니다. 완성된 양념을 초벌된 장어에 발라 다시 구워내면 매콤하고도 감칠맛 나는 양념구이가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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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구이 말고도 요리법이 많습니다. 연산군이 즐겨먹었다는 장어 백숙은 더운 여름철 원기를 살려주는 보양식인데요. 양파와 대파, 생강, 마늘, 장어머리와 뼈, 청주를 넣어 푹 끓인 육수에 수삼과 대추, 마늘, 장어살을 넣고 끓이면 완성입니다. 장어 특유의 맛이 우러난 담백한 육수는 닭백숙과는 다른 느낌의 별미죠.
장어덮밥 | 요기요 파트너마케팅팀
일식집에서는 장어를 간장 소스와 함께 덮밥으로 먹기도 합니다. 장어의 풍미와 달달한 간장이 밥에 스며들어 이색적인 맛이죠. 이외에도 장어 조림이나 강정, 튀김으로 먹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어디에 넣어도 맛 좋은 만능 식재료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하나뿐인 꼬리를 누가 먹을 지가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장어는 꼬리가 가장 몸에 좋다’는 얘기 때문인데요. 과연 사실일까요?
전문가들은 장어 꼬리와 몸통의 영양분이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꼬리보다 통통한 몸통에 단백질과 비타민A가 많이 들어 있다는 주장도 있죠. 또 장어에는 다른 생선에 비해 단백질, 비타민A, 칼슘, 철분 등이 많고 면역력을 강화해주는 ‘불포화지방산’을 섭취할 수 있어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장어가 ‘기운을 북돋아주는 보양식’이라는 건 근거 있는 얘기였습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원기 회복을 위해 오늘 저녁은 장어구이 어떠신가요.
"왜 풍천장어라 했을까"…고창군 '풍천' 지명유래 추적, 연합뉴스, 2016.04.21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장어, 동아일보, 2016.06.29
장어는 정말 정력에 좋은 보양식일까, 경향신문, 2016.07.27
“장어꼬리는 정말 정력에 좋을까요?”, 이데일리, 20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