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택가에 있는 10평 남짓한 치킨집. 롸버트치킨 ‘2호기’를 찾아갔습니다. 빨간 문을 열고 들어가니 키오스크가 한 대 보입니다. 매장에 테이블이 없는 배달 전문점입니다. 메뉴를 살펴보다 ‘후추를 후추후추’를 포장 주문해봤습니다. 통 후추를 넣은 매콤한 치킨인데 양념치킨의 매운맛과 다른 풍미가 느껴지는 인기 메뉴라는 설명에 이끌렸습니다. 음식값을 결제하니 주방에서 2호기 ‘기장님’이 닭고기를 기계에 넣고 ‘로봇 팔’ 작동을 시작합니다.
롸버트치킨은 로봇이 치킨을 조리하는 치킨집입니다. 2호기는 롸버트치킨 2호점을, 기장님은 매장 점장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방 후드에 붙어 있는 빨간 로봇 팔이 내려와 반죽된 닭고기가 담긴 채 망을 잡아 들고 튀김기로 가져가 기름에 넣습니다. 여섯 마디로 꺾인 관절로 움직이며 중간에 튀김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요. 순살은 6분, 뼈닭은 9분 30초. 시간이 다 되면 닭을 건져 기름을 탁탁 털어 기장님에게 전달하죠. 고객이 주문한 양념 맛을 선택해버무리고꼼꼼하게 포장하는 일은 기장님 몫입니다.
로보아르테 강지영 대표님
로봇이 일하는 치킨 브랜드 ‘롸버트치킨’을 만든 건 스타트업 ‘로보아르테’의 강지영 대표님(36)입니다. 로보아르테는 2021년 3월 네이버와 위벤처스에 10억원 투자를 받고 2021년 6월에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서비스 로봇 실증사업의 지원 대상 기업에 선정되며 주목받고 있는 푸드테크 기업이죠. 강 대표님은 롸버트치킨을 ‘로봇의 도움으로 1인이 창업할 수 있는 치킨 브랜드’라고 소개합니다.
2018년 회사를 창업하기 전까지 강 대표님은 ‘투자 전문가’였습니다. 증권사, 벤처투자회사(VC)에서 투자할만한 회사를 발굴하는 일을 했죠. 그런 대표님의 눈길을 끄는 회사가 나타났습니다. 로봇으로 패스트푸드를 조리하는 미국 기업이었죠.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면 투자하고 싶다’ 생각했지만 당시 국내에는 로봇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외식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로봇 주방’에 매료된 강 대표님은 직접 외식업에 로봇을 접목해 보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로보아르테’를 창업했습니다.
강 대표님의 목표는 ‘로봇으로 혼자서 배달로만 매출을 올리는 외식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장규모가 크고 배달 주문이 많은 ‘치킨’으로 메뉴를 정했죠. 하지만 지금의 로봇 주방을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처음 만들려던 건 로봇이 아니라 ‘치킨 자판기’였습니다. 기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죠. 중국에도, 청계천 상가의 숨은 고수에게도 찾아갔지만 설계도가 있는 기계를 만들 수는 있어도 세상에 없던 기계를 창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생 끝에 찾은 국내 업체에 거금을 지불하고 자판기 개발을 시작했지만 약속한 날이 지나도 완성된 기계도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롸버트치킨 1호점 오픈 행사 | 로보아르테
2018년 9월에 창업한 로보아르테의 치킨 브랜드 ‘롸버트치킨’ 1호점이 논현동 아파트 상가에 문을 열고 로봇으로 치킨을 조리하기 시작한 것은 창업 후 1년 반 만인 2020년 2월입니다. 롸버트치킨 1호점 주방에 설치한 로봇팔은 ‘뉴로메카’라는 미국 회사의 기성품 산업용 로봇입니다. 남은 돈과 투자금을 끌어모은 1억원으로 로봇 팔 두 대를 샀습니다. 강 대표님은 “마지막 투자였다. 논현동에 롸버트치킨 1호점 매장을 가오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로보아르테는 주방 로봇팔이 어떻게 움직일지 ‘프로그래밍’하는 회사입니다. 스마트폰 기계에 들어간 안드로이드, iOS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재 롸버트치킨 직영점 두 곳과 삼성동 본사 사무실이 강 대표님의 일터입니다. 사무실은 ‘메뉴 개발자’와 ‘로봇 개발자’가 일하는 연구 본부죠.
롸버트치킨 1호점 설계와 매장 전경 | 로보아르테
“로보아르테는 로봇과 사람이 협동하며 요리하는 효율적인 환경을 만들어요. 어떤 형태의 주방이든 롸버트치킨의 로봇 시스템을 적용해 치킨을 조리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죠.”
롸버트치킨의 세 번째 직영점은 ‘공유주방’에 차려질 예정입니다. 매장 없이 주방만 있는 공간에서 로봇을 세팅하고 배달 매출을 올리는 것이 새로운 도전 과제입니다.
‘로봇으로 치킨 시장에 도전한 30대 CEO.’언론에서 강 대표님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비싼 로봇을 왜 써야 하나, 음식은 손 맛이 중요하지, 매출 얼마나 나오겠냐.’며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죠. 강 대표님은 ‘원래 들어봤던 이야기’라고 답했습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치킨집에 비상이 걸립니다. 주문이 몰리면 배달앱 주문을 안 받으려고 프로그램을 꺼두기도 하죠. 그럴 때 조리시간이 부족해서 배달주문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는 게 로봇 주방의 장점입니다.
치킨을 튀기는 2호점 로봇
“단체 주문을 100마리까지 받아봤어요. 준비하는 데 2시간 걸렸어요. 치킨 한 마리를 평균 13분 정도 조리하고 20분 안에 배달을 시작해요. 한두 마리 튀길 때는 사람이랑 처리 속도가 비슷하죠. 하지만 마릿수가 많아지면 차이가 커요. 사람은 170도 이상 뜨거운 기름 앞에서 치킨 100마리를 같은 속도로 안전하게 조리할 수 없으니까요. 사람이 옆에서 도와주면 로봇 팔이 튀김기 세 대를 동시에 컨트롤하면서 연달아 치킨을 만들 수 있어요.로봇의 내구성을 궁금해하신 분들도 많은데 산업용 로봇이라 치킨을 많이 튀겨서 고장 난 적은 없어요.”
반죽부터 튀김까지 로봇이 조리하는 곳은 롸버트치킨 뿐입니다. 로봇이 치킨을 만드는 동안 사람은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주문을 받으며 배달 고객이 요청한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주문을 늘리기 위한 마케팅 방법을 고민할 수 있죠. 로봇은 할 수 없는 식재료 관리와 위생관리에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로봇의 퍼포먼스에 집중하지 말자. 중요한 건 치킨 맛이다.’ 강 대표님이 창업 초기부터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고 합니다. “푸드테크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저희는 치열한 외식업 시장의 한 가운데 서 있는 F&B 회사에요. 성공하려면 음식이 맛있어야 하죠.”
조리중인 강지영 대표님
‘로봇 주방’에 푹 빠져 회사를 창업한 강 대표님이 가장 먼저 준비한건 치킨 레시피였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이 나오기도 전에 치킨 메뉴 개발자를 찾아갔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후추를 후추후추(후추치킨), 간장 ‘계’장(간장 치킨), 갈비를 갈비갈비(갈비 양념치킨) 등 롸버트치킨 메뉴판을 완성하는 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개발한 메뉴로 2019년 12월 롸버트치킨 1호점을 열었죠. 가오픈한 매장에서 로봇 없이 창업 멤버가 치킨을 튀기며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치킨 맛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합니다. “평범한 치킨집 영업을 해보지 않고 로봇 주방의 좋은 점을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치킨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치킨을 맛있게 만드는 로봇을 프로그래밍 할 수 있으니까요.”
왼쪽부터 '후추를 후추후추'와 '롸버트 양념치킨'
로봇이 조리하는 롸버트치킨의 다섯 가지 메뉴는 앞으로 매장 수가 많아져도 같은 맛과 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 만든 치킨은 튀김 옷 무늬까지 항상 일정한 것이 특징이죠. 그래서 똑같은 레시피로 조리해도 사람이 만든 치킨과 로봇이 만든 치킨은 ‘식감’이 다르다고 합니다.
“롸버트치킨 브랜드의 규모를 키우려면 수익성을 개선해야 해요. 창업 비용과 운영 비용을 낮추기 위해 직영점을 운영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중입니다.” 1호점이 로봇과 인간이 함께 일하는 주방을 실현한 곳이었다면 2호점은 로봇과 사람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조리 동선을 테스트한 곳입니다. 이 과정에서 2호점의 창업 비용은 반으로 줄고 매출은 두배 늘었습니다.
롸버트치킨 1호점 로봇 주방
2020년 2월 개업한 논현동 1호점 매장의 초기 비용이 2억원이었습니다. 15평 매장 보증금 3000만원과 로봇 설비 1억원, 인테리어 비용을 포함한 금액입니다. 2020년 12월 개포동에 10평짜리 2호점 매장을 개업할 때는 비용이 1억원 정도로 줄었습니다. 역시 보증금과 로봇 가격을 포함한 금액입니다. 1호점 월세는 220만원, 2호점 월세는 100만원입니다. 더 좁은 매장을 얻어 임대료가 줄일 수 있었죠. 로봇의 배치와 움직임을 개선한 덕분입니다.
1호점은 초기에 하루 배달 매출 50만원을 넘기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오픈과 함께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죠. 다행히 2020년 9월에 ‘로봇 치킨집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맞추는 내용으로 tvN 예능 방송 ‘식스센스’에 출연했더니 주문이 급증해 하루 매출 200만원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2호점을 오픈하며 ‘하루 매출 50만원만 넘기자’고 생각했었지만 조금씩 인지도를 쌓은 덕분에 하루 배달 매출 80~100만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롸버트치킨 2호점 로봇 주방
“프랜차이즈 치킨 가맹비용이 2억원 이상인 곳도 있어요. 롸버트치킨이 가맹 계약을 시작하면 ‘개업 비용을 낮추는 것’이 점주분들께 드릴 수 있는 혜택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공간이든 저렴하게 로봇 주방을 세팅할 수 있도록 로봇을 개선하는 게 수익성을 개선할 방법이예요.”
강 대표님은 “로봇 주방으로 외식업 매장의 노동 강도가 버거웠던 분들, 외식업 시장에 뛰어들기 두려워 집에만 계셨던 분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외식업계에는 힘들고 불편해도 ‘사람이 조금 더 열심히 일하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하는 방식’에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하려는 일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2호점 매장의 롸버트치킨 로고
최근 3개월 동안 롸버트치킨에 걸려온 가맹점 문의 전화가 50통 이상이라고 합니다. 2021년에 4개, 2022년에 50개까지 매장 수를 늘리는 것이 강 대표님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롸버트치킨은 아직 가맹점 계약을 하지 않습니다. 로봇을 모르는 점주들도 로봇 주방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직영점에서 오류를 테스트하며 운영 방법을 개선하고 있죠. 닭의 완성 상태를 체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로봇 작동이 간편해지면 가맹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내년에 어떤 조리 로봇이 세상에 나올지 알 수 없어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혁신’을 준비하고 있죠. 로보아르테의 5년 후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만 식당과 가정집에서 주방 로봇이 음식을 조리하는 게 익숙한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거실에 TV가 있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요. 그런 날이 오면 로보아르테가 삼성·LG 같은 큰 회사들과 함께 로봇 주방 시장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되어 있길 바랍니다.“